산행

금강산 온정리

국사봉의 삶 2007. 8. 8. 23:01

 북측 교예공연

 

 금강산호텔 2층 금강산그림앞에서...

 

 남북이산가족 상봉장소

 

 남북이산가족 상봉 장소인 금강산호텔 전경

 

 

 2박3일간 머문 외금강호텔 전경

 

 고 정몽헌회장 추모비앞에서

 

 옥류관앞에서...

 

제목 : 금강산에서 달림과 산행


Ⅰ. 달림과 산행

1. 훈련시간과 거리
   1-1) 2007년 7월 25일(수) 05:10 ~ 06:00 (50분)
   1-2) 달림거리 : 8km
   1-3) 금강산 온정리에서 조깅

   2-1) 7월 25일(수) 10:00 ~ 12:30 (150분)
   2-2) 산행거리 : 8km
   2-3) 금강산 내금강 표훈사 ~ 보덕암 ~ 묘길상 (왕복 산행)

   3-1) 7월 26일 (목) 05:40 ~ 06:20 (40분)
   3-2) 달림거리 : 7km
   3-3) 온정리 외금강호텔~금강산호텔 조깅코스에서 조깅

   4-1) 7월 26일 (목)10:00 ~ 11:30 (90분)
   4-2) 산행거리 : 4km
   4-3) 금강산 외금강 만물상 주차장 ~ 천선대 (왕복산행)


Ⅱ. 달림과 산행 세부 내용

1.  통일부 우수 정책고객으로 선정되어 2007년 7월24일(화) ~ 7월26일(목) 2박3일간
금강산 내금강과 외금강 주변 관광 및 통일 연수를 받고 돌아왔다.
금강산에 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제일 먼저 내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금강산에서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이 제일  기뻤다.

거의 매일같이 달림이 생활화된 나로서는 달림 자체가 삶이요, 삶이 곧 달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생활하는 마라토너로서 민족의 영산 금강산에서 달린다는 그 사실 자체가 나를 무척이나 흥분시켰고 그때를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손꼽아 기다리며 금강산 연수길에 올랐다.

2.
2-1) 첫 번째 달림 훈련(온정리에서의 조깅)
전날 자기 전 시계알람을 05:00에  세팅한 후 취침을 하였다.
하지만 금강산에서의 달림을 생각하니 설레는 마음에 제대로 잠 못 이루고
4:50분경에 눈이 떠져 함께 자고 있는 동료의 취침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용하게 달림 복장을 갖추고 숙소인 외금강 호텔 문을 나선다.

온정리 주변은 자욱한 안개에 휩싸여 시야가 그리 밝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달림에는 그리 지장이 없어 발길을 온정리 입구에 건설 중인 남북이산가족 만남의 장소
방향으로 달렸다.
구룡마을을 지나 한 백여 미터 달려 나가니 갑자기 정지라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북측 군인이 제자리에 서라고 지시를 한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얼마나 놀랬던지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면서 쏜살같이 숙소 로비로
돌아와 안내원에게 물었다.

“이곳 온정리에서 어디까지 뛰어 갈 수 있냐고...”
대답은
“구룡마을 입구 까지는 갈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고....“

동쪽으로는 구룡마을까지 밖에 달릴 수 없다면
이번엔 금강산호텔방향으로 달리기로 마음먹고
발길을 금강산호텔방향으로...

하지만
나의 발길은 채 200여 미터도 나아가지 못하고
이번에도 북측 군인들에게 더 이상은 안돼...
라는 정지 신호와 함께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아 그렇다면 이곳 온정리에서의 자유는 반경 1km 도 채 안되는 자유란 말인가???

한편으론 무척이나 속상하고, 한편으론 반경 1km 의 자유도 10여년 전에 비하면
무척이나 진보된 자유라고 위안을 하며 온정리 반경 1km  구간을 다람쥐 쳇바퀴
돌고 돌듯이 50여분간의 조깅으로 첫날 아침을 맞았다.

2-2) 두 번째 훈련(내금강 산행)
온정리에서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안개가 짙게 깔려있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106구비 온정령 고개를 넘어 북측의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달려
드디어 금강산 내금강 표훈사 앞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북측 여성 안내원이 전해주는 금강산의 전설과 여러 이야기는 금강산에 대해 몰랐던

많은 내용들을 알게 되었으며, 얼마나 언변이 좋던지 그저 청산유수라는 표현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금강산에 대해서 너무나도 멋지고 아름답게 표현해 

금강산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더욱 자극하게 만들었다.

 

남쪽의 여러 유명 사찰을 보았던 나는 내금강 입구에 있는 표훈사를 보면서

그저 그런 모양의 사찰로 밖에 느끼지 못하였으나 얼마 전 TV KBS 다큐멘터리 산에서 본 북측의 승려를  직접 확인하는 순간 이곳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을까??? 없을까???를

혼자만의 독백으로 계속 되 뇌일 수밖에...

표훈사~마하연터 ~ 보덕암 ~ 묘길상 으로 이어지는 산행 길에 여러 소와 담을 보면서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고려시대에 지어진 보덕암의 암자가 구리당간지주에 의지한 체 천년 여를 버텨온 현장과  그 옛날 화려했던 장안사가 터밖에 없는 빈 공간으로 남아있는 현실을 보면서 존재의 의미와 과거의 흔적에 대한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역사란 살아 남아있는 자가 승리하는 것인데...라는 글귀를 떠올리며....

2-3) 세 번째 훈련(외금강호텔~금강산호텔 조깅)
저녁 옥류관 만찬에서 마신 술 때문인지 아니면 여행의 여독으로 피곤함 때문인지
5시 알람음을 듣지 못하고 깨어난 시간은 5시30분이 훌쩍 지난 시각에 일어나
어제 옥류관 지배인이 금강산호텔방향은 달릴 수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금강산호텔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말은 단지 말일 뿐...
현실은 어제와 동일하게 북측군인에게 저지당하고 돌아가라는 신호만 내게 돌아오고
결국 난 발걸음을 온정리 방향으로 돌릴 수밖에...

온정리 지역을 두어바퀴 돈 다음 시계를 보니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다시 한번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고
금강산호텔 방향의 북측 초소 방향으로 달려가서  초조한 마음으로 초소앞을 걸으면서
지금은 이곳을 지나가도 괜찮습니까??? 라고 물으니
북측군인은 대답 없이 손짓으로 통과의 신호를 내게 보냈다.

어제 달릴지 못한 그 길...
오늘 아침에도 달리지 못한 그 길을...
내가 지금 달린다.

울창한 아름다리 소나무숲길로 이어진 조깅코스를 달리니
그동안의 모든 피로는 말끔히 사라지고
그저 물위를 사뿐히 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폭신한 마사토가 깔린 길을 사뿐히 달려 금강산호텔 앞에 다다르니
감회가 새롭다.

이곳이 그동안 TV에서만 보았다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었단 말인가???
한동안 호텔 앞을 서성이며 주변을 돌아본 후 왔던 길로 되돌아서
정말로 달리고 싶었던 그 역사의 길을 나의 두 다리로 직접 달린
그 느낌이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나만의 감동으로...
두 번째 날의 아침을 열었다.

(아마도 외금강호텔~금강산호텔 구간의 조깅코스는 현대아산과 북측은 남측 관광객의 자유로운 통행이 가능한 자유구역으로 합의하였지만 북측은 운영상 나름의 체제유지 목적으로 시간규정을 추가로 정해 운영을 하는 것이라 추측해 본다, 자세한 것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한번 확인해 보아야지....)

 

2-4) 네 번째 훈련(만물상 산행)
1만2천 금강산 봉우리들의 으뜸은 단연 만물상지역 이라는 안내원의 설명에 따라 만물상 지역의 산행에 오른다.
하지만 내게 다가선 만물상구간은 설악의 일부분인 공룡능선에서 보았던 그 한부분에 불과하다는 느낌뿐...

 

사실 나에게 그렇게 보여진 이유는
아마도 전날 내금강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안개가 걷히고 맑게 갠 청명한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햇빛에 반사된 금강의 빛을 오늘의 70구비 보다 더 높은 위치인 106구비 온정령고개에서 보았기 때문이리라.

어제 온정령 고개에 접어들어 펼쳐진 만물상의 장관을 본 순간 전율을 느낄 정도로 감탄미의 연속이라고 할까....
한 구비, 한 구비 돌아 내려올 때 펼쳐지는 금강의 변화무쌍한 아름다운  조화에 일행은 감탄과 환호를 연발하였으니,
오늘  두 번째 만난 금강은  어제 처음 맛본 설레임의 감정이 조금은 누그러진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래도 여름 금강의 봉래산 천선대에 펼쳐진 산악미는 한동안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고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산을 했다.

일행중 선두그룹으로 내려왔기에 첫 번째 버스에 올라타 온정리 숙소로 돌아오는 도중.
중간 지점인 금강산호텔에서 하차가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일행 몇 명과 함께 금강산호텔 앞에서 내려 역사적 만남의 장소인 호텔 내 2층에 마련된 이산가족 상봉장소를 직접 목격하고 민족 이산의 한을 느끼며 걸어서 온정리로 돌아왔다.